마당을 나온 암탉. 왜 불편했을까(스포 있음)



마당을 나온 암탉(이하 마당닭). 기대 이상의 수작이었습니다. 그간 한국 애니메이션, 특히 극장판에 대한 모든 편견과 고정관념을 깨는 최고의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겁니다. 특히 마당닭은 그간 극장용 애니메이션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어린이용 애니메이션을 만들어야 한다는 패러다임을 깼다는 점에서 인상적이었습니다. 관객 대상으로 '어린이'가 아닌 '가족'을 노린다는 무모한 도전을, 마당닭은 멋지게 성공시켜 보였습니다. 이번 성공으로 앞으로 한국 애니메이션이 취할 스펙트럼이 늘어났다는 점만 해도 마당닭은 칭찬에 칭찬을 더해야 마땅합니다. 고스트 메신저의 분발에 이어 마당닭의 200만을 향한 맹진까지, 한국 애니메이션 계의 앞날이 밝아보일 지경입니다. 물론 외형적 성공에 취해서도 혹해서도 안 되지만, 해묵은 문제들이 쌓이고 쌓여 있지만, 지금만큼은 잠시 시름을 잊고 축배를 들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축하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마당닭이 마냥 유쾌하기만한 영화였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앞서 말했듯 영화 외적으로는 얼마든지 칭찬할 수 있습니다만, 마당닭의 마지막 5분은 개인적으로 아쉬움을 넘어 실망감까지 느꼈습니다.


저는 마당닭의 마지막 5분을 보면서 매우 혼란스러워졌는데, 그것은 93분 내내 나 자신으로, 그리고 나의 어머니로 투사하던 캐릭터가 갑작스런 죽음을 맞기 때문입니다. 그 죽음에는 일절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잎싹에게는 자신을 공양해 새로운 생명을 살린다는 사명감이 가득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나, 그것은 그녀에게 몰입하던 관객에게는 배신에 가까운 행위였습니다.

그 충격은 마당닭의 환상을 단박에 깨고 현실을 끌고 옵니다. 그 장면의 잎싹에게서 사회와 자식에 희생과 헌신을 강요당한 부모 세대를 읽은 것은 저만이 아닐 겁니다. 자기희생은 물론 숭고한 테마고 오락영화에도 곧잘 쓰이지만, 대저 그러한 류의 오락영화에서는 자기희생이 사랑을 통해 자기완성 혹은 회복으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마당닭의 결말에서는 그런 자기완성 또는 회복이 보이지 않습니다. 어쩌면 각본가는 자손을(초록을) 주인공의 자기완성 또는 회복의 결정체라고 생각한 걸까요. 그랬다면 그것은 터무니 없이 고루한 발상이며, 앞선 세대의 희생을 정당화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하겠습니다.

잎싹에게는 끝까지 살아남아 초록의 귀환을 보고 손자까지 봐야할 권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영화는 그 권리를 무참히 빼앗아갑니다. 그때의 상실감은 이루 커 말할 수 없었습니다. 왜 잎싹이 그런 일을 당했어야 하는 걸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 이유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마음 속에서만이라도 억척같이 살아남은 잎싹을 그립니다. 애꾸눈에게 물어뜯길 그 순간, 나그네를 떠올리며 용기를 얻어 날아오르는 잎싹을 그립니다. 권위를 박탈 당하고 마당을 나온 장닭과 함께 살면서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는 잎싹을 그립니다. 그러다 마침내 더욱 늠름해져 돌아온 초록과 해후하는 잎싹을 그립니다. 네, 뻔한 해피엔딩입니다. 그러나 마당닭이야말로 해피엔딩이 정말로 정말로 필요한 애니메이션이 아니었을까요.

제가 마당닭을 보면서 흘리고 싶었던 눈물은 환희의 눈물이었지 추모의 눈물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눈물을 흘리지도 못한 채 멍해져 영화관을 나왔습니다. 이 혼란스러운 기분은 아마 조금 더 가지 않을까 싶네요. 오늘 밤은 아이유의 바람의 멜로디로 이 기분을 달래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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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데미 2011/08/18 14:56 # 답글

    와오, 개인적으로 완전 정반대의 의견입니다! 저는 잎싹이가 체념을 하고 멍때리다 잡아먹히든, 살려고 발광하다 찢겨죽든 일단은 족제비한테 죽어야 옳다고 생각했거든요.ㅂ. 물론 열심히 싸우다가 죽고, 족제비도 눈물 흘리지 않는편이 더 맘에들었겠지만 이미 그런 스토리를 품고 의인화가 전제된 탓에 그 정도면 훌륭하다고 생각함! 개인적으로는 하늘경주씬에서 해설진의 편파중계가 불편했어요. 아무리 얘들이 타겟이라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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